어린 시절, 나와 짝꿍, 그리고 지금도 운전을 맡아주는 친구.
세 명은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사이였다.
키가 훌쩍 큰 그 친구를 보고 선생님들은 언제나 “너희를 인솔하는 선생님 같다”고 웃으셨다.
그리고 정말 그는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의 길을 걸었고, 정년퇴임 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인솔하는 든든한 선생님이다.
지금도 여행지 숙소 예약부터 운전까지 도맡으며 우리를 이끈다.
이런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생각하면 참 고마운 친구다.

50세에 여행을 함께하기 시작해 봄·가을 해마다 두 번씩 길을 나섰다.
나라 곳곳을 많이 돌아봤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가보지 못한 비경이 많다.
나이가 들어서는 ‘우리가 만나면 얼마나 더 만날까’ 하는 마음에 여름까지 포함해 한 해 세 번씩 만나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장거리 운전이 힘들 법도 한데, 친구는 “너희와 함께라서 행복하다”며 웃는다.
그 친구가 건재해야 우리의 여행도, 우리의 인생도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여행지는 2년 전 머물렀던 원주의 오크밸리 리조트.
지역 음식이 맛있고 숙소도 편안했던 곳이라 다시 찾았다.
시골에 사는 나에게는 KTX로 단숨에 닿는 가장 가까운 여행지이기도 하다.
원주역에서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은 산수가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예쁘고 세련되며, 각자 개성을 지닌 멋진 친구들이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향해 나서던 날, 하늘은 맑아 날씨조차 우리 여행을 축복하는 듯했다.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본 소금강 물결은 윤슬로 반짝였다.
출렁다리에 도착해 가을 산등성이 사이 유리 출렁다리에서 절벽과 강물을 내려다보니, 지나온 세월의 무게와 서로의 삶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다리 끝에서 마주한 친구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이어지는 잔도 길과 까마득한 울렁다리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저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나’ 싶었지만, “언제 또 이런 다리를 건너보겠나?” 그 말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늘과 맞닿은 길 위에서 느낀 아찔함은 단순한 스릴이 아닌, 또 하나의 세월을 함께 건너가는 마음이었다.

잔도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길다고 한다.
평지인 줄 알고 시작한 길이었는데, 가도 가도 지옥 계단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풍경은 기암절벽과 숲이 어우러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의 조화와 비경을 자아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드디어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도착했고, 울렁다리의 시작이 펼쳐졌다.
까마득하게 긴 다리였지만 이 나이에 기꺼이 건넌 용기만큼은 대단했고, 우리는 환호하며 성취감을 나눴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에는 구간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편안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지난번 찾았던 오가네 식당에서 막국수와 감자옹심이, 감자전을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별미의 맛은 오래도록 여운처럼 남았다.

오후에는 원주의 또 하나의 명소, 반계리 은행나무를 찾았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푸른 잎을 간직한 모습이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800년 세월을 견뎌온 거목 앞에서는 계절조차도 잠시 멈춘 듯했다.
돌아보는 방향마다 다른 자태를 드러내는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원주의 역사이자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은 잊지 못했던 ‘연잎밥과 간장게장’의 맛을 다시 찾는 미식 여행이었다.
2년 전 감동을 안겨준 그 집을 다시 찾았지만, 워크숍 단체 손님이 몰린 저녁 시간이라 식당은 분주했고 우리의 사연은 관심 밖이었다.

정성 없는 대접 앞에서 예전의 맛도 빛을 잃었다.
음식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허탈함이 뒤따랐다.

이튿날 아침, 마음을 달래줄 또 하나의 목적지인 구룡사 은행나무로 향했다.
절까지 이어지는 단풍길을 차로 천천히 오를 수 있어 소소한 풍경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
어제 본 반계리 은행나무가 푸르다면, 구룡사의 은행나무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우리는 단숨에 소녀 시절 감성으로 돌아갔다.

구룡사 경내를 천천히 걸으며 전설이 깃든 사찰의 고요함과 단풍의 깊이를 음미한 뒤, 인근 음식점에서 더덕정식과 산채비빔밥, 해물전을 시켰다.
손님들로 붐비는 모습만으로도 음식 맛이 짐작되었고, 정갈하고 담백한 산채의 향이 마음까지 만족스럽게 채워주었다.

오후 4시가 넘어 우리는 2박 3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운전하는 친구는 다시 김천으로, 세 친구는 서울로, 나는 단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지만, 이렇게 함께 여행하며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낀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길고 아찔했던 출렁다리와 울렁다리를 함께 건너며 또 한 번 삶의 활력을 얻었고,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친구들아, 아직 건강하게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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