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크고 작은 은혜를 입으며 살아간다. 나는 늘 생각한다. 남편에게 생명의 은인인 그분을.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맙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표현은 제대로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예전에는 치명적인 병으로 여겨졌던 혈액암. 혈액암 진단을 받았던 남편은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의 유능한 담당의를 만나 정성을 다한 치료 덕분에 새 삶을 살고 있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도 아직 그 고마움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내원해서 항암치료를 받던 어느 날. 남편의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내원 예약 하루 전날, 급히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환자들로 북적이고 정신없이 바빴다.
초조하고 긴 대기 속에서 남편의 응급 처치 순서를 나는 긴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순서를 기다렸다.
응급실 의사는 폐렴과 패혈증이 함께 온 상황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입원 병상은 이미 만실.
남편 상태가 아무리 위중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응급실에서 소개받은 가까운 수유리의 작은 종합병원으로 이송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송 당일 오후 1시, 마침 남편의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상황을 말씀드리니, 담당 교수님이 되묻는다. “지금 폐렴에 패혈증까지 왔는데 어딜 가시려고요?”
그리고는 바로 응급실로 다시 보내셨다.
응급실에서는 누가 보냈냐며 당황해했고, 하루 이상은 응급실에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잠시 후, 담당 교수님이 조치를 취해 주셔서 응급환자가 입원하는 단기 병동으로 보내졌다.
하루를 지나서 무균치료실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위급한 상황을 무사히 넘겼다. 지금은 완쾌되어 어느덧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남편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날 진료가 없었다면,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병원 이송 중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패혈증은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병이니까.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진 그때 그 상황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남편은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거 같고, 그 모든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교수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김영란법 (청탁금지법)이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음료수 한 병도 건넬 수 없어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혜화역에서 내려 병원으로 걸어가는데, 길가에서 할머니가 엿 두 팩을 5천 원에 팔고 계셨다. 그 엿 한 팩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두 팩을 사서, 한 팩은 조심스레 교수님께 드렸다.
혹시 보잘 것 없는 걸 드린다고 불쾌해하시거나, 괜한 부담을 느끼시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맛있겠네요~잘 먹겠습니다.”
하며 웃으며 받아주시는 교수님의 따뜻한 모습에 우리는 마치 큰 선물을 드린 것처럼 기뻤고,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편지라도 한 장 꼭 써서 드려야지 하면서도 그게 자꾸 미뤄지고 미뤄져 8년이 흘렀다.
당시에는 남편 상태가 어떤지 교수님의 얼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좋을 땐 밝은 미소, 좋지 않을 땐 진지한 표정.
그래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남편의 상태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교수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깨끗해졌습니다. 6개월 뒤에 오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진료가 끝나고 명함 한 장을 드리며, 단양에서 펜션을 하고 있으니 꼭 가족과 함께 한번 들러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많은 환자들을 만나셨을 텐데, 과연 우리를 기억이나 하고 계실까.
내 목숨까지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남편을 살려주신 그 은인. 전화라도 한 통 드리면 될 텐데, 그게 왜 그리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매일 수많은 환자들과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교수님.
그분께 잠시나마 휴식이 될 수 있도록, 역사적 유적과 신비로운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단양의 명소들을 구경시켜드리고 싶다.
이 고마운 마음, 과연 언제쯤 전해질까. 우리는 남편을 살려주신 은인을 목숨 다하는 날까지 고마운 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진심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