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은 늘 제때를 알고 찾아온다.
봄이 되면 새싹이 올라와 꽃을 피우고, 어느새 녹색이 짙은 여름이 된다.
찜통더위를 이기고 나면 하늘은 높아지고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나뭇잎은 마당 가득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겨울은 무채색 풍경으로 다가와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아, 그렇게 또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며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고, 또 한 해가 간다.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도 나는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나 역시 계절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건너와 있었다.
다락방에는 20년이 훌쩍 넘은 남편의 양복과 내 외출복, 이불들이 묻혀 있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레기가 될 옷을 버리지 못한 채, 오랫동안 깊숙한 곳에 보관하며 살아온 것이다.

시집올 때 엄마가 해준 명주 이불도 그랬고, 펜션을 운영하며 하나하나 장만했던 이불들도 마찬가지였다.
손님 이불은 늘 깨끗해야 해서 해마다 새 이불을 들이다 보니 다락방은 어느새 포화 상태가 되어 숨통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남편은 원래 버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버리고 나면 꼭 쓸 일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나하나 정리하고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모두 버리자는 말이 나왔다.
잠시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옷을 자루에 담아보니 다섯 자루나 되었다.
이불도 대형 자루 다섯 자루였다.

유행이 지난 딸들이 사준 브랜드 가방, 정성을 들여 내가 직접 만든 손가방 몇 개, 캐리어와 손가방까지, 참 많기도 많았다.
아깝다는 마음을 누르고 또 한 자루를 채웠다.

무엇을 버린다기보다, 버릴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시간을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비우고 나니 다락방은 훤해졌고, 마음속에 오래 눌려 있던 답답함도 함께 빠져나간 듯했다.
나도 이제는 쌓기보다 비우는 쪽이 조금 익숙해진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헌 옷과 이불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며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서로 고마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지 정책이 잘 갖춰진 탓인지 선뜻 내놓을 대상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쓰레기로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이불이라 지인들에게 어려운 분들께 전달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요즘은 남이 쓰던 이불을 주는 건 부담스럽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봄 산불로 재난을 당한 이재민들에게 옷과 이불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도 없이 해보았다.
하지만 잘 사는 나라, 물질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 헌 옷과 헌 이불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물건이 되었다.

자루에 담아둔 채, 이 물건들을 버리는 게 맞는지, 나누지 못하는 게 맞는지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결국 옷은 가곡면사무소 뒤뜰 창고로 보내졌고, 이불은 2천 원짜리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품목에 ‘이불’이라 적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서 수거하는 날 도로에 내놓았다.

멀쩡한 이불을 대형 자루에 담아 쓰레기로 내놓고 보니 이 또한 풍족한 시대가 흘러가는 한 장면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사계절은 또다시 순서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이를 살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는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조용히 덜어내며 살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우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가벼워졌음을 이렇게 또렷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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