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넘치고, 마음은 비어 가고-

물질문명 발달과 물질적풍요는 상대적으로 정(情)이 메말라가는 정신적 빈곤을 낳았다.
물질문명 발달과 물질적풍요는 상대적으로 정(情)이 메말라가는 정신적 빈곤을 낳았다.

요즈음 부쩍 정이 그리워 그리워진다. 정이란 무엇인지 그 답을 찾고자 사전을 들췄다. 한자 정(情) 이 들어간 단어가 많아 그 수를 대충 헤아리다보니 무려 800여개나 된다. 이 글자 하나가 얼마나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던 보이지 않는 실과 같은 존재,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 바로 정이 아니었을까.

정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사랑이나 배려처럼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여운에 가깝다. 중국에서는 주로 남녀 간의 감정을 뜻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정은 훨씬 넓다. 혈연과 이웃을 넘어 낯선 사람에게까지 번져 가는 마음의 파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정 많은 민족이라 불러 왔다.

돌이켜보면,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집이 초라해도 문은 늘 열려 있었다. 길이 저물면 낯선 이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었고, 집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밥을 내는 것이 당연했다. “하룻밤 묵어가세요.” “밥 먹고 가세요.” 그 말 속에는 계산도 조건도 없었다.

어린 시절, 촌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7촌 고모님 댁으로 달려가 따뜻한 밥을 먹었고, 학교를 마치면 8촌 형네 집에서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저녁을 함께했다. 재를 두 개 넘어간 이종4촌 누나네 집에서 묵을 때도 새 이불을 펴 주었다. 어디를 가든 반겨 주는 얼굴이 있었고, 아이였던 나는 먹고 자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산업화는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도만큼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가족은 적어지고 관계는 멀어졌다. 형과 누나라는 말은 혈연보다 사회적 호칭이 되었고, 친척의 얼굴조차 모르는 세대가 낯설지 않다. 경쟁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기는 법은 배웠지만, 함께하는 법은 배울 틈이 없었다.

이제 우리는 정말 잘사는 나라에 살고 있다. 보릿고개도 끼니 걱정도 사라졌다. 그러나 문득 묻게 된다. 과연 이 세상은 살기 좋아졌을까. 물질은 넘치는데, 마음은 왜 이렇게 허전한지. 풍요 속에서 정은 점점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친척끼리도 자주 만나지 않는다. 밥 한 끼 나누는 일조차 부담스러워졌다. 인간관계는 오래 품기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되었다. 정을 주고받는 일은 때로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혼자가 되어 간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술은 점점 완벽해지지만, 사람다움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럴수록 더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정일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마지막 온기 말이다.

문득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런 생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늙은이의 넋두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정이 다시 머물 자리를 찾을 때, 우리 삶도 따뜻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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