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군사반란 아홉시간 동안 일촉즉발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개봉 23일 만에 누적관중 755만명을 돌파하고, 1,000만 관객을 향하여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12.12군사반란 아홉시간 동안 일촉즉발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개봉 23일 만에 누적관중 755만명을 돌파하고, 1,000만 관객을 향하여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44년 전인 1979년 12월12일에 발생한 군사쿠데타’를 재조명한 ‘서울의 봄’ 이라는 영화가 세간의 화제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이 영화를 관람한 소감들이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특히 관객 중 2030세대들의 비중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젊은 세대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영화다. 이처럼 국민의 높은 관심으로 개봉 23일 만에 누적관중 수 772만 명을 돌파하고 곧 1천만 관중을 향해 고공행진 중이다.

나 역시 이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관람했다. 반란군의 핵심인 특전사에서 부사관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직후에 12.12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주역들 중에는 현역시절의 직속상관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비운의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은 5년 동안 지휘관이었다. 또 배역 중에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전두환)의 비서실장 문일평(허화평) 역을 맡은 배우 박훈이 고향 친구의 아들이라는 점이 흥미를 더했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영화는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1979년10월26일 일어난 대통령시해사건으로 일촉즉발의 혼란한 국가위기상황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을 다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원수 유고로 인한 국가비상계엄선포 48일째인 12월12일 밤7시부터 이튿날 새벽4시까지 9시간 동안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141분으로 함축하여 묘사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을 비롯한 한 군대내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주축으로 한 반란군,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비롯한 진압군간의 숨 막히는 일진일퇴의 순간들이 그려졌다.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과 추정이 가능하도록 유사한 가명을 사용했다. 유독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만은 실제 이름과 전혀 다른 ‘이태신 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부대명칭도 가명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2공수 4공수 8공수 등은 실제 없는 부대명칭이다. 당시 특전사의 예하부대는 1‧3‧5‧7‧9‧11‧13 등 홀수의  7개 공수특전여단으로 편성 되어있었다.

반란군의 주력부대로는 특전사(육군특수전사령부)다. 그렇지만 특전사령관인 정병주 소장과 예하 여단 중에 박기홍 준장이 이끄는 부평의 9공수여단만은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고 끝까지 진압군의 편에 섰다. 반대로 진압군의 중심인 수경사(수도경비사령부) 예하부대 중에서 장세동 대령이 이끄는 30경비단은 반란군의 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부대 전체를 평가하기보다는 참군인 또는 정치군인이냐에 따라서 편이 갈렸다고 본다.

내가 현역으로 복무할 당시 선배 부사관으로부터 “전두환은 나중에 대통령 한번 할 거다.” 라는 말을 들었다. 전두환은 준장 시절에는 현역군인으로서 청와대 경호실 근무를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아끼는 군인 중의 한사람이었다. 이런 연고로 일찌감치 권력 맛을 느끼고 정치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이런 선입견과 이미 정해진 엔딩이었지만 보는 내내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황정민 정우성 등 주연배우들과 화려한 조연급 배우들의 명품연기도 압권이었다. 특히 친구의 아들 배우 박훈 의 연기가 훌륭하고 분량도 조연급 치고는 최고로 많아서 흐뭇했다.

요즈음 “서울의 봄 봤어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 한편으로 코로나 펜데믹으로 침체되었던 한국영화가 부활의 용트림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관 바깥은 편갈린 세상이다. 영화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서울 송파구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단체관람을 하려다가 극우 세력의 방해와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로 무산된바가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영화는 관람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예술을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5월17일까지의 정치군인들의 군화에 짓밟힌 국민의 민주화 열기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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