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쿠데타 악용방지시스템 시급-

12월3일 밤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
12월3일 밤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

12월 6일자 한겨례신문에 실린 ‘공수부대 예비역 친구의 눈물’ 이라는 칼럼을 읽으면서 나 또한 특전사 예비역의 한사람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특전사는 과거 박정희의 5.16, 전두환의 12.12와 5.18 쿠데타에 이어 이 번 12.3 윤석열의 불법·위헌 비상계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라고 혈세로 양성한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수부대가 쿠데타에 이용된데 대해서 내가 죄를 지은 느낌이다.

특전사는 그동안 독재통치자와 정치군인들에 의해 반역사적 범죄에 이용되었다. 이번에 동원 된 707특수임무단과 1·3·9공수특전여단 부대원들은 대다수 비상출동 시 임무와 목적지를 몰랐다고 한다. 어느 대원은 대북작전에 투입 되는 줄로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국회의사당이었다고 한다.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에 특화된 말단 군인들은 행위의 정당성에 앞서 상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이슬을 먹고 자란 신세대 군인들이기에 과거처럼 무자비하고 난폭한 행동은 없었다. 시민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듯한 행동을 볼 수 있었고, 철수하면서 시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숙이는 군인도 있었다.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는 1·3·7·9·11·13 6개 여단과 707특수임무단, 해외파병부대인 국제평화지원단(前 5공수특전여단)으로 편성되어있다. 이 부대들을 일반적으로 ‘공수부대’라고 부른다.

나는 1970년대 특수전사령부와 5·11 두 공수특전여단에서 부사관으로 5년 동안 근무했다. 특전사는 전쟁 시 적진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요인 암살·납치, 중요시설 폭파, 테러 및 심리전 등 비정규전 수행과 국내에서의 대테러 및 대비정규전을 임무로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특수부대다. 한사람의 특수요원을 양성하기에는 다양한 특수훈련이 필요하다. 일반 사병의 의무복무 기간으로는 이런 훈련들을 소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4년 이상 복무 조건의 직업군인화 되어있다. 당시에도 행정 취사 위병요원을 제외한 작전 팀은 전원 장교와 부사관(1개 팀은 장교 2명과 부사관 10명)으로 편제되었다.

공수특전여단은 대대별로 작전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5공수특전여단 25대대는 함경북도 00시이다, 전시에는 이 지역으로 공중 침투하여 비정규전 작전을 수행한다. 평상시에 지역에 대한 지리적 여건, 지형지물, 요인 정보를 숙지하고 특수전술훈련을 반복했다. 반면에 적의 특수부대가 우리나라의 후방에 침투하여 비정규전을 벌일 때는 이에 맞서는 대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전술을 숙달하기위하여 매년 천리행군을 병행하는 FTX(Field Training Exercise:야외종합기동훈련)을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폭동진압 훈련’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당시에는 매주 두 시간씩 이 훈련을 실시했다. 진압봉과 총기를 이용하여 시위 군중을 제압하는 훈련이다. 박달나무 진압봉은 경찰용 보다는 크고 무겁다. 상황에 따라서 총기도 사용한다. 폭동진압이란 말처럼 훈련 강도가 매우 높다. 각 대대별로 진압대상이 사전에 지정되어 있다. 당시 내가 소속 된 5공수특전여단 25대대는 서울 흑석동에 소재한 중앙대학교였다. 시위사태가 격화되어 경찰력으로 진압이 불가할 경우는 중앙대학교로 출동하도록 시스템회 되어 있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은 언제라도 특전사를 비상계엄에 이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특전사의 5개 여단 중 7여단(전북 익산)을 제외한 모든 부대를 수도권에 배치했다. 현재는 7개 여단 중 7여단(전북 익산시) 11여단(전남 담양군), 13여단(충북 증평군)을 제외한 4개 여단과 특전사령부가 수도권에 존재하고 있다. 이 번 ‘12.3 윤석열의 내란’ 사태에도 여지없이 ‘특전사’라는 군대를 이용했다.

모든 장병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부대가 어떤 부대든 본인이 속한 부대가 최고의 부대라고 자랑한다. 그래서 예비역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군대 이야기가 단골메뉴가 된다. 각 부대의 병과(兵科)와 임무에 따라서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최고의 부대라고 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특전사가 동원되어 무자비한 탄압과 불법을 저질러 국민의 지탄을 받을 때는 자존심이 무너졌다. 특전사 출신 예비역이라고 말을 끄집어 내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예비역이 이럴진대 현역군인들은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특전사는 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일기당천’(一騎當千: 한명이 적군 천명을 당한다.)이라는 기치아래 최상의 전투력을 갖춘 부대다. 지상 바다 공중에서의 다양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자긍심과 명예로서 극복하고 있다. 전면전이던 국지전이던 대테러 작전이던 가장 먼저 전장에 출동했다. 1968년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과 1976년도 8.18 판문점 북괴군의 도끼만행 사건을 비롯한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76년 8월 특전사 5공수특전여단 25대대 복무 당시의 모습(뒷줄 가운데)
1976년 8월 특전사 5공수특전여단 25대대 복무 당시의 모습(뒷줄 가운데)

한편으로는 1982년 2월 제주도에서 전두환 경호에 동원 되었던 707대원 47명이 탑승한 수송기(C-123)가 추락하여 전원 목숨을 잃었다. 또 1982년 6월 서울 청계산에서 강하(낙하)훈련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53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1998년 4월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서 동계훈련 중 6명의 대원이 순직했다. 1976년 8월 충남 보령에서 해상훈련 중 내 옆의 전우가 순직하는 현장을 함께했고 밤새 그의 시신을 지킨 경험이 있다. 12..12군사반란 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전두환 반란세력에 끝까지 반항하다가 체포·구금된 후 의문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와 정치군인들의 야욕에 이용되어 비난 받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12.3 윤석열 내란사태에서도 내란세력과 정치군인들의 하수인이 되어 적을 향한 총구를 국민을 향해 돌렸다.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유사시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단련한 전투력을 내란에 사용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군인은 모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헌신한다는 자긍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특전사를 비롯한 장병들의 사기가 많이 위축되었으리라고 본다. 대다수 장병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더 큰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다. 내란 가담세력을 제외한 모든 군인들은 한 치의 동요 없이 국방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으로 믿는다.

위대한 국민들이 이번 내란을 이겨냈다. 그러나 내란사건이 일어난 지 한 주가 지나도 내란사건의 수괴는 여전히 군 통수권을 유지한 채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날이 갈수록 내란에 가담한 군대와 국가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한 시라도 빨리 내란 수괴범의 대통령 직무를 정지해야 국민 불안을 덜 수가 있다. 그리고 신속한 수사로 사건의 전말을 밝혀 가담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 아울러 두 번 다시 쿠데타에 군대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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