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24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24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이재명의 고향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이다. 봉화군과 영양군 등 3개 군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산간 오지다. 이곳에서 부친 이경희씨와 모친 구호명씨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유아시절 요절한 누나 두 명을 합하면 9남매 중 일곱째인 셈이다.

공부상 출생일은 1964년 12월22일로 등재되어 있지만 실제는 1963년 10월에 태어났다. 정확한 날짜는 미상이다. 두 명의 누나가 태어 난지 얼마 안 되어 앓다가 몹시 가난해 치료를 못 해 연달아 사망했다.

부모님은 이재명 또한 그럴 수가 있을 것을 우려하여 출생신고를 1년 늦게 했다. 찌든 살림살이 때문에 부모님께서 정확한 생일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때 5㎞가 넘는 산길과 스무 개의 도랑을 건너 두 시간 이상 걸어서 다녔다. 결석이 많아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많이 맞았다고 본인은 회고했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류광우(64세)씨의 말에 의하면 가난해서 학교를 절반 이상을 다니지 못했지만 시험만 보면 늘 1등을 했다. 또 어릴 때 코를 많이 흘려서 옷소매가 반들반들한 ‘코찔찔이’ 이고 가난해서 아랫도리는 입지 않고 뛰놀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마자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으로 이사했다. 가난해서 진학을 못하고 돈을 벌려고 공장으로 가야만 했다. 12세에 첫 직장은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공장이었다. 두 번째 직장은 붕산으로 땜질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사장이 도망가서 월급을 떼이기도 했다. 세 번째 직장은 고무벨트 공장으로 왼손에 고무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이때 선배들로부터 많은 폭행을 당했다. 다섯 번째가 산업용 냉장고를 만드는 ‘아주냉동’ 이었는데 손등이 찢기는 등 두 번의 산재를 당했다. 다섯 번째 직장이 야구글로브와 스키장갑을 만드는 ‘대양실업’이라는 공장이었는데 프레스 기계에 왼 손목 골절상과 외쪽 팔 성장판 파손으로 팔이 휘어지는 장애6급 산업재해를 입었다. 이렇게 6년 동안을 소년공으로 일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몹시 부러웠다. 이러한 환경을 돌파하려고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병행했다. 검정고시로 1978년 중학과정을 마치고 이어서 1980년도에 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하고 1982년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입고사 성적이 우수하여 서울법대 진학이 가능했으나 장학금을 받기위해서 중앙대 법대를 선택했다. 4학년 재학 중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18기)을 수료했다. 성적이 우수하여 판·검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당시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강의를 듣고 약자의 대변자기 되기로 결심했다.

왼쪽 사진은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 오른쪽 사진은 고입 검정고시 시험 당시의 이재명
왼쪽 사진은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 오른쪽 사진은 고입 검정고시 시험 당시의 이재명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성남참여연대를 창립하면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이때 분당 백궁 정자 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제기하여 주목을 받았다. 성남시립병원건립을 추진하면서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정치입문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의 벌금 전과 3건은 이때 시민운동을 하다가 생겼다. 정치 입문 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어서 2018년 경기도지사에 선출되었다.

2017년 성남시장 재임 시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가하여 문재인(57%) 안희정(21.5%)에 이어 3위(21.2)를 했다. 2021년 20대 대통령선거 경선에서는 50.29%를 득표하여 당시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이낙연(39.14%)을 누르고 본선에 올랐다.

본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치열한 접전 끝에 0.73%(247077표)의 근소한 차로 석패했다. 이후부터는 윤석열의 최대 정적이 되어 집중 견제를 받았다.

20대 대통령으로 당선 된 윤석열은 경쟁자였던 이재명을 마치 원수처럼 대했다. 야당의 지도자인 그와는 상대하려 하지 않고 대화를 단절했다. 집권의 걸림돌로 여기면서 정적 제거에 나섰다.

아픈 가족사를 끄집어내어 악마화하고 시민사회운동을 열정적으로 하다가 발생한 벌금전과를 들어 범죄자 프레임을 씌워서 매장하려했다. 심복인 정치검찰을 동원하여 가족 친척 친지 등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100명 이상의 검사와 370여회 이상의 수색을 하면서 그야말로 먼지 털 듯 탈탈 털었다. 그 결과물로 공직선거법위반,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비리, 성남FC관련 불법후원금 수수, 불법대북송금, 위증교사, 경기도법인카드 사적유용 등 9개 범죄혐의로 기소했다.

윤석열은 이재명을 22대 총선 전에 구속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검찰은 2023년2월16일 대장동비리 성남FC불법후원금 위례신도시 등 비리의혹에 관한 체포동의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부결되었다.

2차로 2023년 9월18일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비리, 불법대북송금, 위증교사 등 혐의로 또다시 구속을 시도했다. 이재명은 8월23일부터 23일간 단식을 단행했다. 체포동의요구안은 여당국회위원과 더불어민주당 내 반 이재명 계파 국회의원들의 동조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서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당초 예상을 뒤엎고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2014년 1월2일 부산에서 정치테러를 당했다.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시찰한 후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지지자로 위장한 테러범의 예리한 칼에 의하여 목을 찔렸다. 속목정맥65%가 손상되어 9mm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윤석열은 12.3일 내란을 일으켜 이재명을 영원히 매장시키려 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그를 지켜냈다. 마지막 위기는 2025년 5월1일의 공직선거법위반 파기환송이었다. 대법원이 이례적인 절차로 원심법원의 무죄를 깨고 유죄취지 판결을 하여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를 두고 대다수의 국민은 이재명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사법쿠데타라고 말한다.

대통령선거 운동기간 내내 상대후보로부터 ‘범죄자’ ‘거짓말쟁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 공격을 집요하게 받아왔다. 세 차례의 TV토론회에서 조차 상대방 후보는 시종일관 이런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소년공 이재명은 이처럼 수많은 우여곡절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인생여정에 보듯이 서민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이다. 이미 성공한 성남시정과 경기도정 그리고 야당 대표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검증받았다.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을 이뤄내고 민생경제와 국가의 위상을 회복하여 역사에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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